1939년 경남 합천 출생으로 부산대를 졸업하고 내무부 공무원(지방국 재정과 주사)생활을 하다가 미국 이민을 했다. 이민 초기 뉴저지 저지 시티에 살면서 단순노동과 맨해튼 오차드 스트릿에서 가발 패들러 경험을 쌓고 가발 도매상인 코리안 프로덕트 김형기 사장의 동업 제의를 받아들여 파트너로 들어갔다가 인조가죽 가방 품목으로 새출발한 브로드웨이 한인 상가 개척자이다.
1974년 4월 혁트레이딩을 설립하고 28가 브로드웨이 선상에 도매상을 개업, 사양길을 걷던 한국산 가발의 대체 품목으로 소매상들에게 가방을 적극 추천하는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가발 옆에 한번 놓아보라는 식으로 세일즈를 하던 것이 점차 주종 품목으로 바뀌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미국시장에서는 가죽제 가방이 30달러 정도에 팔리던 것이 싼 인조가죽 제품이 개당 10 달러 미만으로 소개되면서 대중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978년 경제인협회 창립을 주도한 회장으로 이후 뉴욕한인회 이사장에 추대된 그는 한인회관 건립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1984년 한인사회의 염원이었던 한인회관 건립을 성사시키는데 공을 세월다. 90년대 들어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임명되면서 브로드웨이를 떠났다.
이어 경상남도 도지사를 임명직으로 27대, 선출직으로 29, 30, 31대 3선을 기록했다. 또한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85년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